[취재노트] 퓰리처상을 다시 생각한다

2013. 4. 18. 20:13오피니언

[취재노트] 퓰리처상을 다시 생각한다

 

비단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퓰리처'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헝가리 출신 미국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에 만들어진 이 상은 현재에도 전통과 권위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언론 분야에서는 미국 신문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문학과 드라마, 음악 분야 역시 반드시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처럼 유명한 퓰리처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과감한 심층보도를 시도하고 정치 비리를 폭로하는 등 언론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선정주의로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는 부분이다. 그랬던 그가 만든 퓰리처상은 그나마 좀 더 나은, 부정과 부패의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밝은 세상을 위한 걸음에 힘을 보탠 사람들이 차지한다.

 

모든 일을 잘 하기란 힘들다. 당시를 풍미했던 퓰리처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해 완벽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역사를 담는 후배 기자들의 힘을 북돋워 주고자 상을 만들고 후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좋다 나쁘다는 객관적인 잣대라 말하기 어렵겠지만,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중요하겠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에게 사실에 기반한 진실을 왜곡되지 않도록 고심하며 한 자 한 자 써 나가는 기자다운 기자들이 좋다.

 

반면 부정·부패 현장에서 갈등하는 기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고발과 비판의 강약 조절에서 오는 고민일지 모르겠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나쁘면 펜이 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단, 기분이 나쁜 것은 기사를 읽는 독자들을 위한 마음이어야 한다. 취재원이 기자를 대하는 태도나 영접에 불만을 갖는다면 기사는 기자 개인의 안위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빼먹을 게 없어서' 따위 이유가 앞서면 문제를 일으킨다. 동남권 신공항이나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 LH 이전 등 굵직한 사안들이 터질 때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역 이기주의 같은 혼탁 정국이 기자에게마저 확연히 드러난 부분은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겠다.

 

(기사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992)

 

/조문식 기자

 

(2011년 5월 2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