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미스터리 검사(5) - 내부의 적(赤, 붉다)

2015. 9. 15. 12:00미스터리 검사

[팩션] 미스터리 검사(5) - 내부의 적(赤, 붉다)


##붉은 카펫의 의미

 

 

이 변호사의 말이 이어졌지만, 한 기자는 제동을 걸 수 없었다. 이 변호사의 설명은 매우 논리적이었고, 비집고 들어갈 틈은 찾기 힘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이 변호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했고,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오행설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라는 다섯 가지가 음양의 원리에 따라 행함으로써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게 된다는 관점을 갖고 있어요. 음양오행 이론은 비단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의 물리학 법칙으로도 설명이 됩니다.

 

우주에 나타나는 물질은 항상 음과 양의 쌍(세부적으로는 입자-반입자 쌍)으로 나타납니다. 혹시 닐스 보어(Niels Bohr)의 상보성 이론(complementarity principle)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이 변호사의 갑작스런 물리학 용어 사용에 한 기자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뭔가 다른 깊이가 있어보였다. 한 기자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이 변호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빛의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과 같이 서로 상보적이라는 것이 닐스 보어의 상보성 이론의 핵심입니다. 이와 같이 생성된 현상계의 물질은 다양한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등)에 따라 다섯 가지 물질의 형태로 나타나죠. 이는 고체, 액체, 기체, 플라즈마와 암흑물질을 뜻합니다. 동양적 관점에서는 이들을 각각 금, 수, 목, 화, 토에 비유할 수 있죠.”

 

이 변호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한 기자에게 이해가 되는지 물었지만, 한 기자는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음양오행설이 이번 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기자의 답답함이 느껴졌는지 이 변호사는 짧게 질문했다.

 

“한 기자님, 이걸 기사로 쓰고 할 내용은 아니죠? 이번주 금요일 저녁 시간 어떤가요? 괜찮으면 다시 뵙고 싶네요.”

 

“아, 변호사님 괜찮으시다면 저는 좋습니다.”

 

한 기자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 변호사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럼 지난주와 비슷한 시간에 뵙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이번 주도 편안하게 보내시고 금요일날 뵙지요.”

 

이 변호사와 통화를 마친 한 기자의 휴대전화는 6시 30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차, 우 선배하고 저녁에 약속이 있지!’

 

기자실로 뛰어 들어간 한 기자는 급하게 짐을 챙겨 기자출입구 밖으로 나왔다. 마침 우 기자도 기자출입구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정석아, 오늘 마감 잘했어? 어디 갈까?”

 

“선배, 탕 어떠세요? 1차는 간단하게 어묵탕에다 소주 한 잔 어떠세요?”

 

“좋지.”

 

한 기자는 우 기자와 함께 국회를 벗어났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남긴 오행설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새누리당사 앞의 단골 호프집, 우 기자가 담배를 한 대를 입에 문 사이 가게에 먼저 들어간 한 기자는 언제나처럼 구석의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호프집 아르바이트생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메뉴판을 전했다. 잠시 후 들어온 우 기자는 한 기자의 정면에 자리를 잡고 벽에 기대 비스듬히 앉았다.

 

“아…오늘도 피곤한 하루였네. 안주 뭐 정했어? 시켰냐?”

 

“아직요, 선배. 어묵탕에 좋은소주 한 잔 하면 될까요?

 

“그러자.”

 

둘은 안주가 세팅되기 전 빈속에 소주를 한잔씩 들이켰다.

 

“오늘은 소주 맛이 달다.”

 

우 기자는 가볍게 고개를 들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한잔 받으세요.”

 

한 기자와 우 기자는 어묵탕을 안주로 2병째 술을 열고 있었다. 한 기자는 여전히 이 변호사의 말이 신경 쓰였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우 기자를 잠시 지켜보던 한 기자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선배, 혹시 음양오행설 뭐 이런 거 좀 아세요?”

 

“뭐? 그건 갑자기 왜….”

 

술기운이 오른 우 기자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한 기자의 표정 속에 근심이 있음을 알아본 우 기자는 말을 이었다.

 

“정석아, 요즘 뭔 문제 있냐? 아까부터 얼굴이 좀 무겁다?”

 

 

 

한 기자는 일단 오늘 이 변호사의 이야기는 빼고 오늘 이야기의 골자를 설명했다. 한 기자의 말을 잠시 듣던 우 기자는 가볍게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음양오행설 뭐 이런 건 잘 모르겠는데, 어차피 음과 양, 태극 뭐 그런 이야기 아닌가? 붉은 것-푸른 것, 뭐 이런 것도 음양으로 볼 수 있지 않아? 불은 뜨겁고 물은 차갑고….”

 

붉은 것과 푸른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이어가던 우 기자는 레드카펫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레드카펫의 기원은 기원전 458년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쓴 비극 ‘아가멤논’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10년 만에 귀환하자 부인이 신의 길을 상징하는 붉은 카펫을 깔고 맞이했다는 이야기….

 

우 기자는 휴대전화를 열더니 레드카펫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기 나오네…. 그런데 레드카펫이란 건 아내가 남편을 모함하기 위해서라고 하네. 이를 눈치챈 아가멤논은 ‘빨간색 길은 오로지 신만이 오를 수 있는 것’이라며 아내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그러다 중세 유럽에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이유가… 당시 빨간색 천은 일반인들이 사기에는 비싸서 그렇다는 군…. 그때는 붉게 물들이기 위해 케르메스(연지벌레)라는 곤충이 사용됐다는데, 융단 10kg을 염색하려면 몇 마리가 필요한지 알아?”

 

우 기자는 답을 보고 있는 신처럼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한 기자는 웃으며 우 기자의 잔을 채웠다.

 

“무려 14만 마리가 필요해서 당시 유럽 왕실에서 왕이 왕좌에 오르는 길과 연단 같은데 레드카펫을 깔았다고 나오네.”

 

어느덧 시간은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입가심으로 맥주나 한 잔 하러가자.”

 

우 기자는 먼저 짐을 챙겨 계산대로 향했다. 짐을 정리하던 한 기자는 우 기자의 말을 되새기다 의외의 생각을 하게 됐다.

 

“붉은 색이라…. 국회 로텐더홀에도 레드카펫이 있지. 이번에 B 의원이 쓰러진 것도 그 근처고….”

 

한 기자는 앞서 출발하는 우 기자를 따라가면서도 이 변호사가 말한 음양오행설과 우 기자가 말한 레드카펫의 의미 속에 뭔가 연관되는 점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조문식 sharpsharp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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