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미스터리 검사(6) - 국회 분수대의 음기

2015. 9. 16. 12:00미스터리 검사

[팩션] 미스터리 검사(6) - 국회 분수대의 음기


##꿈속의 여인

 

대한민국 국회

 

자정 무렵 집에 도착한 한 기자는 메고 온 가방을 방구석에 내려놓고 정장 윗도리를 그 위에 얹었다. 한 기자는 조금 무거운 기분을 뒤로한 채 발길을 욕실로 옮겼다. 가볍게 씻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였다.

 

잠시 거울을 바라보던 한 기자가 물을 틀어 손을 닦으려는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욕실을 둘러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낀 한 기자는 급하게 세수만 하고 욕실을 나왔다.

 

“아….”

 

기분 탓이라 생각한 한 기자는 옷을 벗어놓고 방의 불을 끈 후 비스듬히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기자는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손으로 톡톡 치는 느낌을 받았다.

 

‘뭐야!’

 

두려움을 느낀 한 기자는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소리도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힘겹게 뒤를 돌아봤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감도는 방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

 

‘불을 켜야겠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나 방의 불을 켜려고 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기자는 아직 자신이 꿈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고 짐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가 큰 개와 비슷한 동물을 한 마리 끌고 나오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기자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다른 상황이 이어져 보이기 시작했다.

 

“꿈인가….”

 

새벽에 잠에서 깬 한 기자는 식은땀을 닦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등을 톡톡 친 것은 분명 남자 손처럼 투박하지 않은 여자의 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싹한 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등을 친 움직임은 얼핏 보기에도 뭔가를 암시하려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꿈으로 넘어갔고, 그런 연속된 꿈이 여러 번 반복된 끝에 깨어난 것이었다. 한 기자는 이날 꿈에서 꿈으로 깊게 빠져들고, 다른 꿈이 연속되는 속에서도 그 느낌과 꿈의 진행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 보통 꿈을 꾸고 깨어나서 잊는 것과는 다른 묘함이 있었다.

 

꿈속에 나온 것으로 느껴진 여인의 형상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한 기자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 한 기자는 침대 옆 메모지에 이 상황을 짧게 기록했다. 새벽에 잠이 깬 한 기자는 다시 잠을 청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상한 것은 이날 집에 들어와서 세수를 하기 직전에 느꼈던 오싹함이 사라졌다는 부분이었다. 대신 무언가 새로운 궁금증이 커지고 있었다.

 

한 기자는 샤워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가을날의 아침, 조금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한 기자는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국회로 향했다. 출근하는 길에 한 기자는 이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만난 채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또, B 의원이 갑자기 쓰러진 이유도 궁금했다.

 

한 기자는 숙취를 줄이기 위해 종이컵으로 물을 두잔 들이켰다. 그제야 속이 좀 편해졌다. 오전 취재일정을 챙긴 한 기자는 감 비서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오늘 점심일정 있으세요?”

 

감 비서관은 본관 작은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답했다. 한 기자는 11시 30분이 조금 넘어 본관에서 감 비서관을 만났다. 감 비서관은 한 기자에게 이 변호사를 잘 만났는지 물었다.

 

“네, 형. 이 변호사님 친절하고 좋으시던데요. 그런데 어디 몸이 좀 편찮으세요? 어제 아침에 전화했더니 여비서가 대신 받았는데, 오전에는 활동이 좀 힘들다고 해서요….”

 

감 비서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식권 2장요.”

 

계산을 마친 감 비서관은 식당을 둘러보다 한 기자에게 식당 안쪽의 오른쪽 구석자리가 비어있다고 눈짓했다. 둘이 자리에 앉자 직원이 준비된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날 메뉴는 낙지덮밥이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감 비서관은 한 기자를 보며 이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몸이 어떻게 안 좋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보통 조금 늦은 오후부터 업무를 하는 것 같더라고. 원래 아침형인간이 있으면 저녁형인간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닐까하는데. 개인적인 사정도 있겠고, 어차피 돈 벌려고 사무실 연 것도 아니고….”

 

감 비서관은 이 변호사와 대학시절부터 알았던 친구라 잘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모르는 점도 있을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의문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 있어 우정에 흠을 내는 부분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만큼 이 변호사의 인간됨이 훌륭하고, 아는 것도 많아 배울 점이 분명하다는 설명이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후생관으로 이동했다.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산 둘은 밖으로 나와 구석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과는 달리 정오 무렵에는 햇살이 제법 강해 조금 덥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 비서관은 챙겨온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아, 이 맛이지. 밥 먹고 담배 한 대….”

 

“형, 저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이 변호사님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이번에 B 의원 쓰러진 일 물어보려고 메모 남겼는데, 오후에 전화 주셨더라고요. 전화로 열심히 설명해주셨는데, 제가 잘 못 알아들어서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한 기자는 아직 식지 않은 커피를 불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런 한 기자를 슬쩍 보던 감 비서관은 크게 웃었다.

 

“정석아, 한결이가 같은 사람 2번 이상 본다는 건 지난번에 네가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다. 뭔가 도움을 주려고 그러나보네….”

 

“그게 뭘까요?”

 

한 기자는 이번 건에 대한 이 변호사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담배를 태운 감 비서관은 B 의원이 쓰러진 이후 일에 대해 한 기자에게 설명했다.

 

“그날 의원 옆에 의원실 직원들이 돌아가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을 맡은 비서관이 잠깐 자리를 비웠나봐. 날이 쌀쌀해져서 미음도 좀 데우고 한다고 갔다는데, 그때 쓰러져서 앞에 있던 방호과 직원들이 급하게 챙긴 모양이야…. 그 비서관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와이프가 국회 비서했던, 너도 얼굴 알걸? 근데, 의원이 이날 일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외부에 하지 말라고 했다더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한 기자는 감 비서관에게 새벽에 꾼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감 비서관은 꿈속에 큰 개처럼 생긴 동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개꿈이라고 강조했다. 또 크게 신경 안 써도 되겠다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감 비서관과 헤어져 기자실로 돌아온 한 기자는 여전히 새벽에 꾼 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꿈속에서 느낀 여인이 자신을 겁주려고 했으면 놀라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꿈속에서 가볍게 등을 두드려 관심을 끌고, 깊은 꿈으로 유도한 것은 뭔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한 기자는 노트북을 켜고 꿈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해몽은 찾지 못했다. 조금 허전함을 느낀 한 기자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집어 들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뉴스에서는 때마침 B 의원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B 의원은 국회 의무실에서 급하게 상태를 체크하고 여의도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수액을 맞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곧 식사도 할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 기자는 맥주를 마시다 텔레비전을 켜둔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 기자는 꿈을 자주 꾸지 않는 편인데, 이날에도 전날보다 좀 더 세밀한 묘사가 꿈속에서 이어졌다. 한 기자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공중에 뜨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여의도였다. 그리고 V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곳의 입구를 통해 들어가니 큰 술집이 나왔다.

 

2층쯤일까…? 그 공간 속으로 인식되는 가게의 열린 문으로 남자 무리가 한 기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기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십 명의 여인들이 짧은 원피스 등을 입고 줄지어 있었는데, 그쪽을 바라보는 남성들 중에는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었다. 가끔 보도자료를 들고 찾아오는 의원실 보좌관과 비서관이었다.

 

그러다 한 기자는 평소처럼 국회 정문에서 본관 쪽으로 잔디밭을 걷고 있었다. 한 기자는 분수대 근처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는 모습을 봤다. 분명히 이 변호사의 비서인 채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바람에 조금씩 흩날리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분명히 치파오였다.

 

옷의 소재는 비단인 것 같았다. 옷이 바람에 조금씩 날리며 하얀 다리가 보이는데, 그는 한 기자가 자신을 알아본 것을 인식한 듯 가볍게 미소 띤 얼굴로 눈인사를 했다. 이어 마치 이 꿈의 내용을 기억하라는 듯 왼손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이마 쪽으로 가져갔다. 이어 몸을 돌려 분수대 뒤편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한 기자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급하게 따라가다가 꿈에서 깼다.

 

‘낮의 태양은 양, 밤의 달은 음. 양은 곧 남자, 음은 여자를 뜻하기도 하는데. 밤은 여자와 음기로 이어지는 선이라는 의미인가…. 그런데 왜 그는 국회 분수대 뒤쪽으로 나를 부르는 모양을 한 걸까?’

 

한 기자는 문득 이 변호사가 말한 양과 음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은 온통 더 큰 궁금증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계속)

 

조문식 sharpsharp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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