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미스터리 검사(2) - 첫 추리

2015. 9. 10. 12:00미스터리 검사

[팩션] 미스터리 검사(2) - 첫 추리

 

##숨은 추적자

 

 

시간은 저녁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 기자의 메모에서 이 변호사는 몇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메모에 적힌 여비서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이들이 움직인 시간을 아는 것이 첫 번째 열쇠였다. 모두 한 기자가 평소 자주 찾는 의원실 식구들이라 여비서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한 기자는 휴대전화로 당시 상황을 하나 둘 채워갔다. 금요일 밤이었지만, 제법 많은 의원실이 국감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우지 않아 3일 밤 이들의 동선을 체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 먼저 기재위 소속 유모 비서.
‘이날 밤 8시가 좀 지난 시간에 양치를 하러 나왔다가 목격. 8시 저녁뉴스 시작하고 첫 기사를 보다 나와서 확실함.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인 것은 알겠는데, 얼굴은 정확하게 보지 못함.’ (※국회를 방문하려면 출입구에서 방호과 직원들의 신분검사 후 출입 가능. 국회 남자 직원 중에서 머리가 긴 사람은 보기 힘듦.)

 

- 다음은 기재위 소속 한모 비서.
‘그날 저녁 먹고 7시 반 전에 의원실로 들어옴. 비서관님 말씀 듣고 서류 정리하던 중에 국감 질의관련해서 놓친 의원실이 있어서 감. ㅇㅇㅇ 의원방인데, 남자직원이 나이로 보면 비서관 이상은 돼보였음. 저도 국회 온지 얼마 안돼서…. 자리 와서 야식 배달시켜놓으라는 비서관님 말씀에 주문한 걸 생각하면 8시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 통화시작 시간은 7시 58분.’

 

- 법사위 소속 정모 비서의 답변.
‘언니(위의 기재위 소속 유모 비서)와 같이 점심을 먹어서 옷을 기억. 여자들은 옷이 뚜렷한 편인데, 언니는 특히 옷을 예쁘게 잘 입어서 확실함. 화장실 입구 쪽에서 의원실로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봄.’

 

정리된 메모를 보던 이 변호사는 가볍게 웃더니 한 기자에게 저녁약속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 기자는 감 비서관에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저녁약속을 잡지 않고 온 상태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잠시 한 기자를 바라보더니 저녁에 식사하면서 가볍게 술 한 잔 하자고 권했다.

 

이 변호사는 친구인 감 비서관이 소개하면서 ‘한 기자가 술을 좀 마신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이 변호사의 말에 한 기자는 흔쾌히 승낙하며 이번 일에 대해 좀 알겠냐고 되물었다. 이 변호사는 한 기자에게 마지막 질문이라며 창문 열린 비서관이 속한 의원실을 비롯해 여비서 3명이 속한 의원실의 호실과 위치도 물었다. 의원실 위치라면 국회수첩에 모두 나와 있다는 말을 들은 이 변호사는 한 기자가 꺼내준 국회수첩을 살폈다.

 

“평면도를 본다는 느낌으로 생각해봐요. 창문 열린 의원실은 7층 오른쪽 끝자락, 유모 비서가 속한 의원실은 6층 왼쪽 끝자락. 둘 모두 의원실 근처에 화장실이 있죠? 또 한모 비서가 속한 방은 8층의 오른쪽에 가까운 중간쯤에 있고, 정모 비서가 속한 방은 6층의 왼쪽에 가까운 중간쯤이죠. 이해되겠어요?”

 

질문을 던진 이 변호사는 한 기자의 수첩으로 눈을 돌렸다.

 

“글쎄요….”

 

한 기자는 특별히 짚이는 부분은 찾지 못했다.

 

“여비서들은 국회에 오래 있었나요?”

 

이 변호사는 여비서들의 구성을 궁금해 했다. 이에 대해 한 기자는 한모 비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18대 국회부터 알고 지내던 인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한 기자는 여전히 이번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 변호사가 한 기자에게 ‘이번 일이 귀신 출현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라는 짐작 정도였다. 이 변호사는 고개를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도 국회의원회관의 구조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는데, 이번 건에서 창문 열린 방의 남자는 한 여자를 숨기려고 했다고 보이네요. 개인적으로 중요한…. 한모 비서가 자료를 전해주려고 의원실 문을 두드린 시점에서 그 방에는 남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아마 여자겠지요… 머리카락이 긴. 그런데 문제는 남자가 그 시간 이 여자를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놀란 남자가 잠시 상황을 살피는 사이 여자는 의원실에 있는 사무용책상 아래에 숨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뭔가가 떨어지면서 ‘쿵’하는 소리가 났겠지요. 창문은 원래 열려있었을 수도 있고, 둘 사이의 체취를 감추기 위해 급하게 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은 1분 안쪽이면 충분하지요. 다음으로 놀란 표정의 남성이 문을 열고 앞에 서있는 한모 비서에게 ‘의원방으로 누가 들어간 것 같다. 같이 살펴보자.’고 말했겠지요.

 

아직 국회경험이 짧은 한모 비서는 비서관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의 지시에 따라 같이 의원방쪽으로 이동해 문을 열고 안쪽을 살폈겠지요. 남자는 의원이 쓰는 테이블 아래도 살피고, 의원방에 딸린 화장실의 문도 열어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착각한 것 같다며 의원의 방을 나와 한모 비서가 가져온 서류를 잠시 살피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무실책상 아래에 있던 여자는 둘이 의원의 방을 확인하려고 들어간 사이에 의원실을 나가 근처 계단으로 움직일 수 있지요. 복도를 이용하면 업무 중 화장실 등을 다니는 직원들과 마주칠 수 있으니 밤시간 여직원들은 피하는 가까운 계단을 이용해 한층 내려갑니다. 건물이 높아 전층을 걸어서 내려가기는 힘이 드니 6층으로 내려와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때 화장실을 가던 유모 비서가 이를 봅니다.

 

사무동과 계단 사이의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얼굴을 살짝 내민 여자의 모습에 놀란 유모 비서는 급하게 의원실로 뛰어가는데, 비슷한 시간 의원실을 나서 화장실로 가려던 정모 비서가 이런 유모 비서를 본 것이지요. 늦은 밤에 여자가 놀라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고, 뛰는 소리가 복도를 울려 정모 비서의 눈길을 끌게 됩니다.

 

또 정모 비서가 속한 의원실은 6층의 왼쪽에 가까워서 몸도 가까운 화장실 방향으로 향한 상태였으니 유모 비서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이후 뒤로 고개를 돌려서 봤다 하더라도 7층에서 내려온 여자는 유모 비서와 눈을 마주친 후 다시 문을 닫고 계단을 이용해 이동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결국 이번 문제는 7층의 남자와 그 방에서 나온 여자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야겠습니다.”

 

한 기자는 순간적으로 ‘탁’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무릎을 쳤다. 국회 속 비밀 연인관계가 있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무성했다. 한 기자는 국회에서 메신저 등으로 이런 소문이 급하게 돈다는 점을 생각하며 이번 귀신 소동이 커진 것을 되새기고 있었다. 국회의원도 그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

 

“배고프지 않나요?”

 

잠시 웃고 있던 이 변호사는 한 기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 기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 변호사는 업무용 책상 옆 옷걸이로 팔을 뻗어 정장 상의를 챙겨들었다.

 

“이 건물이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지만 숨은 맛집이 제법 있지요. 자, 갑시다.”

 

한 기자가 수첩 등 짐을 챙기는 사이 이 변호사는 여비서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좀 전에 들어온 사무실 문을 열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다. 복도에서 바라본 광경은 이 건물에 들어오며 느낀 작은 화원 수준이 아니었다. 날이 어두워서 그런지, 건물 중앙에 울창한 숲이 들어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기자와 이 변호사는 조금 전까지 나누던 국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작동되지 않는듯했다. 복도와 계단의 깜빡이는 형광등은 조금 전 이 변호사의 깔끔한 사무실과 대조적으로 보였다. 몇 층 정도 내려왔을 때 이 변호사는 다시 통로의 회색문을 열었다. 한 기자는 “이 건물 안에도 식당이 있는 모양이네요…”라고 중얼거렸다.

 

이 변호사의 사무실보다는 낮은 층에 있는 식당, 그 곳 역시 이 변호사의 사무실처럼 입구에 무슨 ‘바(BAR)’라고 적힌 작은 간판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부는 그리 초라하지 않았다. 좁지 않은 식당이었는데, 손님은 없었다. 이 변호사는 이집의 단골손님처럼 보였다. 둘은 웨이터리스의 안내에 따라 발이 쳐진 공간의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이 변호사는 한 기자에게 좋아하는 메뉴를 물었고, 한 기자는 딱히 가리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감 비서관이 미리 설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테이블 위로는 코스요리들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었다. 이를 중식이나 일식, 양식 등으로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이 변호사는 이 식당을 소위 말하는 ‘퓨전 메뉴 전문’이라고 소개했다. 음식의 맛 또한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다.

 

가볍게 식사를 즐기던 이 변호사는 한 기자에게 술 한 잔을 권했다. 한 기자도 술을 제법 잘하는 편인데, 한잔 두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술은 어느새 두세 병 비워졌다. 둘 사이의 이야기가 점차 열기를 더하고 있을 무렵 식당으로 손님이 들어온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발 사이로 웨이터리스가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이 변호사는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 자리에 동석할 사람을 한명 초대했어요”라고 말했다.

 

(계속)

 

조문식  sharpsharp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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