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미스터리 검사(3) - 쓰러진 국회의원

2015. 9. 11. 12:00미스터리 검사

[팩션] 미스터리 검사(3) - 쓰러진 국회의원

 

##이 변호사의 여비서

 

 

식당으로 들어온 사람은 웨이터리스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오고 있었다. 발 건너편에서 보기에도 여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걸어오는 그는 치파오를 입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지만 턱 선은 갸름했다. 이 변호사는 한 기자를 잠깐 보다가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다름 아닌 좀 전에 만났던 이 변호사의 여비서였다.

 

“변호사님, 말씀하신 업무 마무리 짓고 보고 드리려고 잠시 들렀습니다.”

 

이 변호사는 여비서와 같이 식사를 이어가도 괜찮을지 물었다. 한 기자가 승낙하자 여비서는 한 기자에게 목례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리스는 종종 있는 일인 것처럼 여비서 앞에 새 접시와 수저를 내놓았다.

 

이 변호사는 한 기자와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비서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둘의 대화를 지켜봤다. 음식은 맛있었다. 그리고 한 기자가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눈을 비비며 깨어난 곳은 집 침대 위였다. 제법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고 생각했지만, 숙취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덧 정오를 넘어선 시간이었다. 피곤함은 여전했다. 한 기자는 책상 앞에 앉아 어제의 상황을 되짚었지만, 집에 돌아온 기억은 없었다.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과음을 한 것일까? 하지만 이 변호사가 짚어준 내용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또 취재수첩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날짜가 적혀있었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하지만 평소 한 기자의 정리방식과는 다른 메모였다. 필체도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필체는 조금 굵었고, 궁서체(宮書體)였다. 한 기자는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 오후를 이런 저런 생각들로 채웠지만, 별다른 결론은 내지 못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한 기자는 기사로 쓸 국감 자료를 검토하기 위해 국회로 출근했다.

 

월요일자 아이템 역시 국감 관련 자료 속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기자실에서 잠시 숨을 돌린 한 기자는 감 비서관을 만나기 위해 급히 발길을 의원회관으로 옮겼다. 하지만 의원실 여비서는 감 비서관이 자료를 챙겨갔고, 집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요일 근무라는 것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가정이 있는 사람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꼴이니 말이다. 한 기자는 발길을 다시 기자실로 옮겼다. 하지만 이 변호사에 대한 궁금증은 한 기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이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인데, 이번 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날 저녁 한 기자는 오랜만에 만난 선배인 우종군 기자와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 우 기자는 사회부에서 일하고 하고 있는데, 국감에서 사회 관련 자료를 지시하고 처리하는 등 일종의 취재 지원을 위해 파견 형식으로 잠시 국회로 출입처가 조정된 상태였다.

 

우 기자는 거의 사회부 붙박이로 있으면서 다양한 사건·사고는 물론 특종 등 이슈를 다양하게 만져본 베테랑 기자였다. 특히 종교, 신앙, 미신 등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덕에 아직까지 미혼이어서 역시나 미혼인 한 기자와 어울려 저녁시간을 술로 때우곤 했다.

 

한 기자는 오랜만에 만난 우 기자에게 주간에 있었던 국회 여비서들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이 변호사의 추리를 들려줬다. 또 이 변호사가 미스터리 검사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잠시 이야기를 듣던 우 기자는 한 기자의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이어 본인의 잔을 직접 채우며 기괴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궁서체가 뭔지 아냐? 조선시대 궁녀들이 궁중에서 쓰던 서체다. 깔끔하고 우아하며 단아한 느낌이지. 근데 말이야, 그 속에는 여인들의 아픔이 깊게 묻어있다는 거야. 궁이라는 답답한 공간에서 서화(서예와 그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낸 거라고.

 

누구 하나 봐주지 않는 그런 살벌한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당시 궁에 있던 여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걸 떠나 시간을 보내고 자신을 다듬는다는 의미로 서화를 했다는 거야.

 

근데, 하필이면 네 수첩에 적힌 ‘2009년 5월 23일, 토요일’이라는 글자가 궁서체야. 그 자리에 변호사 말고 그 여비서로 보이는 사람도 왔다면서? 이건 남자 글씨는 아니다…. 또 그날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이면서, 국회에 설치된 남근석을 옮긴 날이기도 하다는데….”

 

소주 한 잔을 비운 우 기자는 한참동안 여의도와 국회의사당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우 기자의 말을 빌리면 국회는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시대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전국 지리서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따르면 이곳은 ‘양말산’, 즉 말을 키우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옛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은 장소 활용 내용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공동 묘지터와 화장터였다는 것이다.

 

몸이 좋지 않은 궁녀는 궁 안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법도에 따라 궁 밖으로 퇴출됐는데, 이후 사망하게 되면 남대문이 아닌 시구문을 통해 시체를 여의도, 즉 지금의 국회의사당이 있는 장소에 버렸다는 말이었다.

한참을 떠드는 우 기자를 앞에 놓고 한 기자는 소주잔을 비웠다. 그 사이 휴대전화에 한통의 문자가 들어왔다.

 

‘민주통합당 B 의원 단식 6일째로 종료. 건강상 이상 증세 보여 의무실로 이동.’

 

“선배, B 의원 단식 풀었다네요? 내일까지 하면 일주일인데, 그것도 이 밤중에? 문자에는 건강상 이상 증세가 보여서 의무실로 이동했다는데요?”

 

한 기자는 우 기자를 보며 새로 들어온 소식에 대해 짧게 브리핑했다. 또 단식을 하면서 6일을 버티는 것도 대단하다며 말을 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 기자를 바라보는 한 기자의 눈이 번쩍였다.

 

“정석아, 정치부 다 퇴근했냐? 그거 내용 좀 파악해봐.”

 

9시가 넘어가는 시간, 누가 국회에 남아있을까 고민하던 한 기자는 후배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리기 시작했다.

 

‘B 의원 좀 전에 단식 풀었다는데 이유 아는 사람?’

 

잠시 후 타사 후배를 시작으로 정보가 하나 둘 들어왔다.

 

- 의원실 설명에 따르면 옆에 있던 비서관이 미음 좀 데우러 간 사이에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져서 본관 의무실로 옮겼다고.

 

- 네, 쓰러졌답니다. 저희 지금 생방 들어가기로 해서 스탠딩 준비 중.

 

- 선배, 좀 전에 2보 올린 거 걸어요. ‘단식 6일차를 채워가던 B 의원은 7일 밤 갑자기 의식 잃고 쓰러졌다. B 의원실에 따르면…’

 

한 기자와 우 기자는 새로 들어오는 내용을 읽고 있었다. 소주 한 잔을 비운 우 기자는 한 기자에게 주중에 시간을 맞춰서 같이 의원실에 가자고 제안했다. 잠시 망설이던 한 기자는 우 기자와 일정을 맞추기로 하고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다음날 오전, 다시 국감 취재에 나선 한 기자는 아직 메모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주말에 쉬는 동안에도 궁금증이 일었지만, 아직 많이 친하지 않은 이 변호사에게 쉬는 날 전화를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꾹 눌러 참고 있었다. 한 기자는 오전 10시가 넘어 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3~4차례의 통화음이 울리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 변호사가 아니었다.

 

“이한결 변호사님 휴대전화입니다. 어떤 용무로 전화하셨나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것은 여자 목소리였다. 한 기자는 가만히 말을 이었다.

 

“예, 전 지난주 금요일에 이 변호사님을 만난 한정석 기자라고 합니다. 이 변호사님과 잠시 통화를 좀 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수화기 너머의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한 기자님, 안녕하세요? 지난주 금요일에 뵈었지요? 그날 댁에는 잘 들어가셨나요? 저는 이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업무를 돕고 있는 채은이라고 합니다. 변호사님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사무실에 오래 있지 못하세요. 평소 오전에는 제가 전화를 받고 있어요. 혹시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여비서 이름이 채은이군….’

 

한 기자는 그에게 어젯밤 일어난 의원의 갑작스런 단식 중단에 뭔가 숨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일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어 이 변호사에게 물어보기 위해 연락했다고 말을 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채 비서는 메모를 남기겠다고 답했다. 이어 오늘 오후에 이 변호사가 직접 전화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본관은 직사각형에 돔을 씌운 형태죠. 이는 전통 상여 가마와 비슷한 형태인데, 아마 변호사님이 이번 건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실 거예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채 비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 기자는 일단 미스터리 검사로 불리는 이 변호사의 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조문식 sharpsharp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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