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색안경 정치

2013. 4. 19. 00:16오피니언

[취재노트]색안경 정치

 

아이가 태어나면 안경을 씌우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국토가 황폐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특수한 안경을 개발했고 태어난 아이가 한 해 한 해 성장할 때마다 조금씩 짙은 안경을 바꿔쓰게 한다. 나이가 들어 장년층이 될 무렵이면 안경의 색은 주변의 황폐함을 보고도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된 기술을 가졌다. 단순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한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자 가해자의 부모는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이를 지켜보는 가해학생의 눈에 우리나라는 힘만 있으면 잘못도 넘어갈 수 있다는 색안경이 씌워질 수 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지나 성장한 아이가 선거를 한다. 정의나 책임감과 같은 말이 이 아이의 마음에는 그저 주변의 황폐한 소재 가운데 하나로 변한다.

 

피해자는 그 과정을 극복하고 어른으로 성장해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영화와 같은 상상도 가능하다. 물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례가 더 자주 들려오고 이는 순간적으로 사회적 분노를 형성하지만 당사자와 그 주변의 사람이 아닌 이상 개인의 영역 속에 담으려 하지 않는다. 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최대한 배척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 같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진정으로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구조를 우리의 근대사 속으로 끌어들여 보자. 일제강점기의 매국노 사례와 해방 이후의 이데올로기 대치, 경제위기 이후 나타난 신자유주의까지. 엄혹한 시기는 노련한 정치인에게 오히려 기회가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정치인에게 색깔은 곧 표현이며 타인이 느끼는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새삼 색안경을 말하는 것은 현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너무나 간단한 조치가 통한다는 점이다. 고위공직에서 봉사했다는 사람은 대형 로펌으로 이동한다. 이를 막기 위한 입법을 놓고 국회의원은 미래의 한 자리를 남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 넘어간다.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 한반도 위기론을 끌어오고 국가 채무는 국민의 애국심에 기대면 그만이다. 우리는 지금 후대에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기사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11222)

 

/조문식 기자

 

(2013년 4월 17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