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언론인 리영희 선생을 돌아보며

2010. 12. 13. 20:15오피니언

"나의 글이 젊은 후배세대들이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 되길"

참언론인 리영희 선생을 돌아보며

조 문 식

카페에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지난 5일 타계한 고 리영희 선생의 이야기를 꺼내든 것도 그런 의미다. 생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까닭에 이제는 책속의 글을 통해서나마 그의 인생을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는 리 선생.

책장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리 선생의 책들을 하나 둘 꺼내보는데, 원고지 10장에 감히 적어보자니 걱정부터 앞선다. 선생의 삶에서 흠결을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저 남겨진 책과 대화를 나누며 한 분의 삶을 개략적으로나마 한자 한자 정성껏 적어보는 것으로 그치게 된다. 리 선생은 <우상과 이성>에서 "나는 나의 글이 젊은 후배세대들이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 작은 씨가 뿌려져서 썩지 않고 더 큰 열매를 맺는 것을 보는 마음은 한없이 흐뭇하다"고 적고 있다.

독재가 당연시 여겨졌던 엄혹한 시절이었기에 역으로 사회와 조금만 타협했다면 남부럽지 않은 권력과 부를 누리는 삶도 가능했겠지만 그는 언론사와 대학에서 내쫓기는 삶을 회피하지 않았다. 리 선생은 에세이집 <스핑크스의 코>에서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두 차례에 걸쳐 4년씩 합계 8년간 교수직에서 쫓겨났던 탓에, 대학재직 23년에도 불구하고 노후생활을 보장해줄 연금의 혜택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정년퇴직 후에 기대했던 한가한 '제2의 인생'은 '제1.5의 인생'이 되어 여전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리 선생은 한국은 물론 세계사적 대변화의 시기에 거센 파도 몰아치는 외로운 섬의 등대처럼 고립된 한국사회의 미숙한 대중에게 '시대정신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펜을 앞세운 이성의 목소리는 물론 투쟁의 거리와 감옥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반세기의 신화>에서 리 선생은 분단된 조국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도 했다. "분단된 민족의 남과 북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에 대해서 한결같이 '신화'를 믿어왔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개인들과 집단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반공주의'의 위장 아래 거짓을 진실로 교육하고 선전하고 '법'으로 강요해왔다. 심지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여 선량한 시민들의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마비시켜온 반세기였다"고 강조했다.

리 선생은 지난 1994년 4월호와 5월호 월간 <말>지에 기고한 '내가 아직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유1,2'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때 황당무계한 광신적 반공주의 군부 독재시대에는 그 문제(무신론) 때문에 중앙정보부 요원들, 경찰의 대공반 조사관들, 심지어 형무소의 교도과장하고도 많은 입씨름을 했고 괴로움을 당했다. '종교가 뭐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하면, '그럼 공산주의자가 아닌가?'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그러고 나면 그 이후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사건의 심문조사에서 무종교자는 자동적으로 공산주의자로 치부된다."

글에서 리 선생은 또 "그저 세상에 태어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어주고 불러준 그대로의 이름으로 생명의 위대한 어머니인 땅으로 되돌아갈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기자로서 펜을 빼앗긴 순간에도 진실에 대한 열망을 주체할 수 없었던 참언론인 리영희. 강단 바깥으로 내쳐진 순간에도 대중에게 진실을 바치며 만인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그는 야만과 광기가 몰아치던 시대의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 대중의 이해를 위한 스스로의 희생에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지독히도 냉정했던 존재다. 엄혹한 시절 대중의 희망이었던 탓에 그는 사상의 은사, 실천하는 지식인 등의 수식어를 달기에 충분하다. 21세기, 20대 후반을 살아가는 기자에게 리 선생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신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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