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중립적인가?

2010. 7. 31. 16:38오피니언


 

조 문 식

대학교 후배가 군에 입대한다고 연락해왔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친구인데, 지방에서 서울에 혼자 올라와서 생활하고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2년 가까이 생활하던 공간을 떠나 고향집에 내려갔는데, 입대 전에 나를 만나고 가겠다는 말이었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흔쾌히 승낙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처리하지 않은 기사가 생겨 약속시간에 늦게 된 것. 일단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으나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럭저럭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다. 멋쩍게 웃으며 들어섰는데 이 친구가 나를 반기며 말을 이었다.

"형, 생일선물이요."

손에는 포장지로 싼 박스가 있었다.

"뭔데?"
"구두요. 형 많이 걸으셔서 발아프실 것 같아서 아저씨한테 발 편한 구두로 달라고 했어요."

'쿵' 가슴 한 컨이 뭉클했다. 이 친구는 신입생으로 학교에 들어온 후 우리 동아리에 처음으로 가입했다. 개인적으로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는데, 이 친구도 만만찮은 고집쟁이였다. 조금 다르다고 일단 말을 하면 맞건 틀리건, 같건 다르건 우기고 본다. 그러면서 민망할 때면 한 잔을 건네곤 했다.

"형, 술 한잔 해요"

난 이런 후배들이 여럿 있다. 이건 솔직히 자랑이다. 그 중에는 학교를 늦게 들어와 나보다 나이가 3살이나 많은 형부터 올해 갓 입학한 20살 새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날 만나면 종종 묻는게 "기자하니까 좋냐?"와 "무슨 색깔이냐?"다.

일단 좋으냐, 나쁘냐는 질문에는 "직접 해 보라"고 답한다. "직접 경험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이건 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왜?"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간단하다. "좋은지 나쁜지는 사람마다 다른 거다. 나도 아직은 잘 모르니까"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다음 질문인 듯 하다. '색깔'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 지 몰라도 내 대답은 심플하다. 생각대로라면 중립에 맞추고 싶은데, 실제 기사는 조금 우로 간다고. 그러면서 30분 정도는 말을 이어간다. 색깔에 대한 변명이거나 현실에 대한 비판이겠다. 기자는 직업이고, 기사는 장난이 아니다. 기사를 쓰는데도 기본이 있고 기자들은 적어도 몇 개월간 선배들의 지도와 교육을 받고 익힌다. 그래서 교과서적으로 쓴다면 일단 기자라면 누구나 중립을 추구한다고 하겠다. 단,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고 치자. 찬성 측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시간 동안 10장짜리 이유를 냈다. 반대 측에서도 기자회견을 열긴 했는데 30분간 5장짜리 이유를 내놨다고 하자. 물론 글자크기나 종이 등 기본적인 사항은 같다고 전제하는 거다.

이 문제가 정답이 없는 '가치갈등'의 문제라면 10장을 낸 입장과 5장을 낸 입장을 같은 지면에 비슷한 길이로 작성하는 게 맞다고 본다. 기자가 10장을 싣고, 5장을 실어 분량이 달라지면 사실성 면에서는 옳겠으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당할 수 있겠다.

이처럼 중립이란 개념은 이념과 현실에서 다르게 작용한다고 본다. 무조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하는 기본수학이나 과학적 가치관과도 조금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색깔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태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공산주의라는 각기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결집된 국가다. 이게 포인트다.

기자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중립에 가까운 기사를 쓰고자 한다. 문제는 중립을 향해 간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위배되는 방향과 좀 더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특히 중립에서 좌로 넘어간다면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라인을 달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중립의 선을 넘겠는가? 그래서 나 역시 약간 우로 치우친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 민주공화국이니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거다. 또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갖는다. 그런데, 생각의 자유는 언제나 가능할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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