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30. 12:00ㆍ미스터리 검사
[팩션] 미스터리 검사(14) - 자백(自白)유도제
##마약과 최음제
후배 재연을 보낸 한 기자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궁금증은 여전했다. 특히 재연과의 식사에서도 내뱉은 것처럼 갑자기 떠오른 책에서 본 듯한 말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명상은 영어로 메디테이션(meditation), 약(medicine)이라는 단어와 어원이 같다. 명상은 영혼의 약…. 이게 무슨 말일까….’
집에 온 과정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만찬자리에서의 행동은 하나 둘 떠올랐다. 고민에 빠진 한 기자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내가 평소와 달리 좀 편하게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별 시답잖은 소리도 했는데…. 내가 의미 없이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 기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 속과 어제 입은 정장의 주머니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살피던 한 기자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얇은 물티슈를 찾았다.
‘왜 주머니에 이런 걸 넣어뒀지? 뭔가 의미가 있을텐데….’
잠시 생각을 정리한 한 기자는 경찰청에 있는 학교 선배 진의탁 경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고시특채 출신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주말이었지만, 진 경정의 전화는 바로 연결됐다.
“정석아, 오랜만이다. 잘 지내?”
진 경정은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한 기자에게도 평소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사회에 나와서 알게 됐지만, 평소에도 종종 만나 식사를 나누는 사이여서 한 기자는 진 경정을 형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형님,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좀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한 기자는 이 변호사와 채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술자리에서 생긴 사례로 정리해 진 경정에게 설명했다. 또, 그 자리에서 평소와 달리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그래서, 살아있냐? 그거 약 타서 그런 거 아냐? 자백유도제 같은 거? 왜, 영화에서 보면 정보 캐내려고 그런 거 쓰기도 하잖아.”
한 기자의 말을 듣던 진 경정은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말을 이었다.
“뭐, 그 자리에서 다른 생각나는 거나 증거 같은 건 없고?”
진 경정의 말에 한 기자는 자켓에서 나온 물티슈 이야기를 꺼냈다.
“에이, 형님도 참…. 저한테 뭐 빼낼게 있나요. 그저 보통 술자리에 가도 깔끔하게 마시려고 하는데, 오늘 찾아보니 이상하게 자켓에 조금 젖은 물티슈가 들어있더라고요…. 입을 닦았다거나 하면 묻어나온 게 있겠는데, 겉보기에는 깨끗한 물티슈네요.”
“음….”
수화기 넘어 진 경정의 말이 끊어졌다. 잠시 후 입을 연 진 경정은 한 기자에게 생각한 방향이 있는지 물었다. 한 기자 역시 따로 생각을 정리할 틈이 없었던지라 잠시 뜸을 들이다 답을 이었다.
“형님, 요즘 이런 저런 사건들 많은데…. 이런 건도 인지수사 거리가 되나요? 아니면 물티슈 성분조사 정도는 될까요?”
수화기 넘어 잠시 말이 끊어졌던 진 경정은 조금 낮은 목소리로 운을 땠다.
“에브리 컨택 리브즈 어 트래이스(Every contact leaves a trace)….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알지?”
진 경정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로카르의 법칙을 읊으며 한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역시 아직은 짚이는 부분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집에 랩 있어? 없으면 일회용 비닐봉지라도 몇 겹 겹쳐서 냉장고에 얼지 않게 넣어뒀다가 시간 될 때 가져와봐. 월요일날 오랜만에 점심 같이할까? 요즘 국감이라 우리도 좀 바쁘니까 이번에는 이쪽으로 좀 오면 어떻겠어? 다음 주에 국과수 가는 인원 있으면 좀 신경써보라고 할 테니….”
진 경정의 말에 한 기자는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알았다고 답한 한 기자는 월요일 점심시간에 만나 국정감사 진행상황 등도 이야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어 진 경정이 설명한데로 물티슈를 조심스럽게 포장해 냉장고 아래 서늘한 곳에 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었다.
자켓에서 나온 물티슈 처리를 끝낸 한 기자는 마취과 전문의인 형 한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주말인데 뭐해?”
“정석아, 왜?”
한 기자의 형 정수는 빠른 말투였다. 언제나처럼 ‘요점만 간단하게’를 강조하는 정수의 스타일을 아는 한 기자의 말도 자연스레 빨라졌다.
“취재하고 있는데 요즘 대마초 뭐 이런 마약류 사건 많잖아? 최음제 이런 것도 뭔지 좀 알아?”
“야, 바쁜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 뭔 건인데? 내 전공인데, 모를 리가 있냐. 급해? 위험한 거 쓸데없이 건드리지 말고….”
정수는 말은 좀 퉁명스러웠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 정석에 대해서는 나름 신경을 쓰고 있는 말투였다. 하지만, 한 기자는 일단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한 기자는 요즘 술자리에서 최음제 사건 등이 종종 발생한다고 언급하며 정수의 견해를 들으려고 했다. 동생의 말에 정수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수술 들어가야 해서 짧게 설명할 테니까 한 번에 알아들어라. 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뇌를 발달시켰잖아. 그 중에서도 마약은 뇌와 관련되지.
인간의 정신활동을 관장하는 대뇌의 전두엽합령이라는 부위가 마약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고, 현재까지 의학적 관점에서 설명이다. 일단 그렇고, 여기서(전두엽합령) 인간의 감정(희노애락)을 관장하는 각성물질이 자연적으로 합성되고 또 분비되고.
몸에서 만드는 양은 당연히 적지. 그런데 마약이라는 물질은 이 각성물질과 구조가 매우 비슷해. 흔하게 말하는 대마초는 ‘델타나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delta-9 tetrahydrocannabinol)’이 환각을 일으키는 주요 물질이고.
너 담배피우냐? 대마초에는 담배보다 훨씬 많은 자극제하고 타르가 있어서 뇌와 인두에 염증도 유발하니까 알아두고. 상습적으로 흡연하면 뇌기능장애 일으킨다. 혹시라도 궁금하다고 피우지 말고…. 됐냐? 그럼 끊는다….”
형 정수가 전화를 끊을 것 같은 순간 한 기자는 급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형, 아까 질문 두 개했는데…?”
한 기자의 말에 정수는 귀찮은 듯 말을 이었다.
“아, 참…. 최음제는 뭐? 사건이라고? 너 취재하게?”
“그런 건 아니고….”
정수는 평소처럼 답답하다는 듯 한 기자에게 내뱉듯 말을 이었다.
“비슷한 설명인데, 최음제는 말 그대로 성기능이나 성욕을 촉진하는 물질이라고 하지. 보통 히로뽕이라고 많이 듣잖아? 그런 마약류도 최음제 기능이 있지만, 장기간 복용하면 뇌신경마비나 신경쇠약 등등해서 부작용이 커.
최음재 종류에는 소위 말하는 발기중추를 자극하는 ‘스트리키닌(strychnine)’같은 화학물질과 인간의 성호르몬을 이용해서 만드는 호르몬제제, 흥분을 유발하는 성분이 포함된 식물류도 있고. 됐냐? 집에는 언제 오게?”
한 기자는 형 정수의 전화가 끊어지기 전 한방 약재로도 이런 종류를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정수는 전화를 끊기 전 한방에 대해서 평소처럼 불편한 견해를 내놨다. 하지만 한 기자가 재차 묻자 한방의 음양곽, 구기자, 팔미탕, 육미탕 등을 나열하며 단일 식품이나 약품으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자르고 전화를 끊었다.
주말동안 물티슈와 약물의 관련성을 놓고 생각을 이어간 한 기자는 최근 기억이 끊어진 것 같은 이상 현상이 특정 약물에 의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변호사와 채은을 만나고 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과 맞물려 두려움이 더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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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미스터리 검사(13) - 창백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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