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소련 군대는 '점령군'이었다

2010. 7. 31. 16:27이슈


특정 국가에 대한 신화 버려야

조 문 식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점령군이 아니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부터 약 3년 동안 북한에 주둔하면서 해방군을 자처했지만, 일본군 못지않게 무도한 패악을 저질렀다.

소련군은 총을 들이대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물론,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범죄를 저질렀다. 이에 항의하는 여성의 남편과 가족들은 살해되기도 했다. 이를 막기 위해 북한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재산과 가족을 지키는 시기를 보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옛 소련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소련군 보고서는 스탈린 군대가 한반도에서 저지른 만행을 확인시켜준다. 소련의 중좌 페드로프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를 돌아보고 1945년 8월 이후 5개월 동안 소련군의 악행을 기록한 문건을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소련군의 약탈, 폭력은 물론 부녀자 겁탈 사례가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소련군의 악행이 얼마나 심했으면 파견된 군에 대해 '강한 법률로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보고서까지 만들었나를 곰곰이 생각해 볼만하다.

물론 소련군은 페드로프의 문건을 묵살, 한반도 내에서의 약탈과 강간에 관대함을 보였다. 당시 소련의 사랑관이었던 치스차코프는 소련군의 약탈에 항의하는 봉기가 일어난다면 조선사람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망언을 했다. 소련의 북한 점령은 우리 민족에 닥친 또 다른 비극이었다.

이처럼 전쟁과 정치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지금까지 미군이 한국에서 행한 범죄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권력과 자본의 틀 속에서 이런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광복 전후의 사회상과 미소 점령군에 대한 이해는 한반도의 역사를 다루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깊이있게 고민하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역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과거를 투영하고, 현재를 나타내며 미래의 계획을 위한 대비를 제시한다. 반만년의 역사나 민족의 자긍심은 물론 좋다. 하지만, 이를 체제나 정치, 이념 등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수가 좋은 일에도 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국제화 시대, 세계 네트워크에 동참하자는 것은 좋지만, 분명한 점은 다른 나라의 도움은 '은혜'가 아니라 '빚' 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