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정치적 수사(修辭)

2013. 11. 13. 09:53오피니언

백화점에서 구입한 상품이 품질보증 기간에 아이의 가위질로 망가져서 반품해달라고 할 때, 고객에 대한 직원의 대응은 어때야 할까. 우스갯소리로 가장 현명한 표현은 "고객님, 반품해드리겠습니다"가 아닌 "고객님, 아이는 다치지 않았나요?"가 우선이다.

 

11~12일 국회에서 열린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며 정치적 수사(修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현재 정치권을 보면 청문회에 임하는 국회의원은 때로는 강압적 언어로, 또 한편으로는 구슬리면서 후보자의 의중을 확인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후보자 입에서 수없이 이어진 답변은 "검토해보겠다"로 요약된다. 국정감사 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여기에 '긍정적' '적극' 등이 붙으면 그럴듯한 답변이 만들어진다.

 

"검토해보겠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정도다. '어떤 의견이나 그 내용을 찬찬히 살피거나 잘 따져 본다'는 의미를 담은 '검토'라는 표현은 사실 특정 항목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제시하거나 해결책을 내놓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검토라는 표현의 힘은 대단하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은 황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국정원 사태의 본질, 해법 등에 대해 추궁했고 그 결과로 '검토' 또는 '확인'의 답변을 얻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황 후보자가 감사원장이 된 후의 사정은 알 수 없다.

 

"검토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표현 기법인 '검토'. 요즘 박근혜 정부의 정책 행보를 봐도 이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균형발전', '지역발전', '요구 사안'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정도다.

 

정치에서 레토릭만 앞에 두고 적절한 본질과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조삼모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검사·감독하고 행정기관과 공무원 등의 업무처리를 감찰함으로써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드는 자리인 감사원장은 적어도 정치적 수사에 신경 쓰기보다는 공정한 감사를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문식 기자

 

(기사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0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