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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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완성
조문식 차분하고, 멋진 일이다 늘 그렇듯 시간은 소리 없이 나를 스쳐간다 쓰는 일과 그 순간은 내면의 불안에서 나를 해방시킨다 주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유지하는 고마움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외연의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쓸 때만은 나잇값 할 수 있는 욕심이다 삶에 대한 온기를 느끼며 아픔과 슬픔은 기쁨과 행복을 찾는다 마음속 행복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건강과 펜 끝을 채워주는 정신적 기력 덕분이겠다 나를 스치는 시간 속에서 간간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서로의 안부를 그리워하는 것 인생이란 무작정 흰 캔버스 속의 스펙트럼처럼 흩어진 추억의 모음일까 시간의 완성은 그렇게 스쳐가고 있다 (2012년 5월의 어느 날)
2012.06.04 -
잡초꽃
조문식 이른 봄, 나의 정원에서 고목이 미처 움을 틔우기도 전에 흙은 푸른 생명을 토해냈다 싸늘한 대기의 흡입이 대지의 생기를 느리게나마 보드랍게 열어주는 때 거칠게 고개를 드는 잡초는 때 이른 봄을 홀로 힘차게 맞이한다 연약한 존재들은 온기를 회복한 잔디 속에서 하나 둘 꽃을 피운다 흙은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명의 움직임 속에서 들려오는 씨를 품은 대지의 기척 뽑혀지고 베어지는 잡초의 슬픔, 외롭고 슬픈 시간 속 가녀린 존재들이다 햇살 좋은 봄날 잔디밭에 누워 그럭저럭 살아남은 잡초꽃을 본다 (2012년 5월의 어느 날)
2012.06.03 -
꽃비 내리는 날
꽃비 내리는 날 조 문 식 올 봄은 유난히 따뜻하다 겨울을 밀어낸 봄은 그렇게 다시 찾아왔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사랑스런 여인을 보러 가는 길도 아니다 출근길에, 짧지만 엄연한 꽃길이 있다 차로만 지나가던 그 길을 처음으로 걸었다 가늘게 떠지는 눈 바람에 날리는 꽃잎과 바닥에서 엷게 흩어지는 꼬마 회오리 속의 꽃잎을 본다 귓가를 맴도는 음악소리에 커피 한 목음의 여유가 있다 일하러 가는 길이 아니다 홀로 떠나는 소풍을 즐긴다 길섶에 누워 쏟아지는 꽃비를 맞아볼까 불현듯 두 볼에 떠오르는 보조개처럼 봄날을 만끽하는 작은 행복에 겹다 고개를 들어 나를 찾아온 봄 또 다시 나는 무방비상태로 지금을 즐긴다 (글 = 2009년 4월, 사진 = 2007년 4월)
2012.04.29 -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위의 별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위의 별들 조문식 세월은 흘렀지만 언제나처럼 초겨울 밤하늘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달무리를 보여줄 고향집 앞마당과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위의 별들 어린 시절 보았던 고향의 별들은 눈이 아닌 가슴속에 빛나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 설 고향의 하늘은 아름다운 달무리를 보여줄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어린 시절 보았던 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오랜만에 꽉 찬 달을 바라보며 속이 좁아 떠나보낸 지나간 시간에게 사과할 수 있을까 찬바람이 귓불을 스치듯 겨울은 지나간 기억을 차가운 얼음 속 환영처럼 채우나보다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밤하늘은 너무나 평온하고 달빛에 가린 모습이 새겨진다 조용히 날아온 새 한 마리가 조용히 바라보는 지평선과 함께 조용히 앉아 나를 지켜본다 (2011년 11..
2011.11.28 -
메모리
조 문 식 겨울과 봄 사이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바다와 하늘 사이의 수평선을 보며 오늘을 살아감에 대한 감사를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서 우리에 대한 기억을
2010.07.25 -
책읽기의 즐거움
조 문 식 읽고 싶은 장르가 모여있는 도서관에서 남몰래 기뻐함은 서고의 주인이 아니어도 마음이 부자임을 앎이다 신간을 읽어도, 고전을 읽어도 그곳에 오래 머무르기를 원함은 오래된 책에서 나는 종이 곰팡내를 사랑하고 새로 들인 책에서 나는 잉크냄새를 좋아함이다 활자의 정렬한 춤사위가 사로잡는 보물창고에 머무르며 마음 가득 포만감을 느끼고 정신적 배부름을 느끼는 것은 읽고 또 읽어도 줄지 않는 지식의 샘을 사랑해서이며 고뇌와 아픔, 슬픔과 공포를 느낌 없이 옛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능해서다
2010.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