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광주] ‘정치’보다는 ‘경제’…“가능성 보일 때 유권자로 돌아올 것”

2015. 3. 3. 01:30이슈

 

 

(서울 용산에서 광주로 가는 KTX 표/ 조문식닷컴)

 

 

지난달 26일 이른 아침 서울 용산에서 광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서대전-논산-계룡-익산-장성을 거치는 행로 속 표는 39700원이라는 값으로 매겨졌다. 한역, 한역 정차하는 거리마다 다양하던 말투는 조금씩 통일되고 있었고, 계룡을 지나자 대부분 호남 말투를 쓰기 시작했다. 열차 속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처리하고 있었다. 사업상 광주로 가는 사람은 이 열차가 광주송정역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섭섭해 하기도 했고,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는 아침의 여정이 피곤한지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이른 아침 출발에도 광주역에 발을 디딘 것은 11시에 접해서였다. 평일 오전 광주역 주변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전자기기 배터리를 충전하는 등 오전 취재를 준비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며 정치를 바라보는 광주지역의 시선에 대해 질문하자 직원인 노 다니엘(26)씨는 “문재인, 정동영 등을 떠나 정치계가 빈익빈 부익부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노 씨는 “공약은 내놓고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면 바뀐다. 한국인으로서, 국민으로서 솔직히 짜증이 났다”며 “그나마 지금까지 투표해서 당선된 대통령 중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찾은 광주역 모습/ 조문식닷컴)

 

 

카페를 나와 다시 찾은 광주역은 서서히 퍼지는 정오의 햇빛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이동한 양동시장은 스산했다. 그날따라 부는 강한 바람도 한 몫 해 몸이 떨렸다. 좌판을 편 상인 등으로 시장은 그 모양을 갖췄지만 이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장에서 만난 정행자(84)씨는 광주에 45년 정도 살았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정 씨는 “설 밑이라 시장에 사람들이 적은 것 같다”면서도 “전반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걱정했다. 또 정치에 대한 질문에는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고생이 있다”며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먹고 사는 게 더 문제”라고 못 박았다.

 

이날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제법 비슷했다. 광주에서 기업택시를 운전하다 개인택시를 낸 지 2년이 됐다는 정현(44) 씨는 이날 광주시청으로 이동하는 길에 현재 정치에 대해 “문재인, 정동영 등도 100%는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씨는 “국민모임 (말이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여파는 없는데 아직 여러 소리가 들린다”며 “(광주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지역색, 이런 게 아니라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가는 과정 등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야권은) 어차피 한 배를 탄 거니까, 전통 민주당이 있다 보니까…그분들이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라며 “단순히 봐도 (야권) 표가 갈라지는 게 보이잖아요. 안에서 일궈나가는 건 바람직할 수 있는데 따로 나오는 것은…(문제가 있다고 본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찾은 광주 양동시장 모습/ 조문식닷컴)

 

 

기본 취재일정은 광주 출신 기자들이 알려준 효율적 동선인 ‘광주역-양동시장-광주시청-광주역’ 정도로 잡았지만, 오랜만에 찾은 광주가 예전과 달라진 것에 대해 좀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먼저 양동시장에서 둘러본 길에는 지하철역이 있었다. 광주 지하철역은 1개 노선에 20개의 역이 있다고 했다. 양동시장역은 시장만큼이나 사람이 적어서 ‘이래서 만성적자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양동시장역에서 탄 지하철은 돌고개-농성-화정-쌍촌-운천-상무역을 지나 김대중컨벤션센터역으로 향했다. 이날 찾은 김대중컨벤션센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고, 지역방송의 사우회도 열리는 등 활기가 넘쳤다. 1층 출입구 옆에 있는 김대중 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사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있었다.

 

오랜만에 둘러본 광주는 차가운 날씨와는 달리 평온한 기운도 전했다. 이날 다시 지하철을 타고 광주시청 근처에서 내린 후 옮겨탄 택시에서도 기사는 서울에서 왔다는 설명에 광주의 볼거리와 먹거리 등을 자랑스레 설명했다. 광주시청으로 가기 전 들른 한 식당에서도 이는 확인할 수 있었다. 6000원짜리 백반에 밥 한 공기를 더해 7000원짜리 식사였지만,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옆에는 10여 개의 다양한 찬이 더해졌다. 식사를 계산하는 조금 늦은 시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찾은 김대중컨벤션센터/ 조문식닷컴)

 

 

뉴스에 집중하는 사람들 속에서 기자라고 밝힌 후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차수덕(59) 씨에게 물어봐도 정치에 대한 답은 비슷했다. 정치보다는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하소연에 가까웠다. 차 씨는 “(광주도 경제 상황이) 최악이다. 갈수록 안 좋아진다. 매출이 예전에 100이었다면 요즘 60정도 되는 것 같다”며 “세금 이런 문제, 식당을 하니 부가가치세 조절(낮추는 것) 같은 정책이 나와줘야 하는데…(이 동네에 오면서 봤겠지만) 바로 밑에 고기 파는 집도 문을 닫았다. 유동인구도 줄어서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이날 밤 광주송정역을 출발해 서울 용산으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먹은 1만원짜리 도시락은 광주의 맛을 그립게 했다. 2000원짜리 맥주 한 캔을 더하는 속에서 광주는 서서히 멀어졌다.

 

이번 광주 방문에서 만난 시민들은 왜 모두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갖고 경제 살리기나 잘해달라고 주문했을까? 이에 대해 광주 출신 언론인은 ‘정권교체가 되겠느냐에 대한 자괴감’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광주매일신문 김진수 서울취재본부장은 2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광주시민들은 스스로 정치의식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1야당(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에는 (광주의) 리더십이 배제되고 있다”고 제시했다. 김 본부장은 “제1야당에 대한 시니컬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며 “제1야당이 집권 가능성을 보일 때 뜨거운 열정을 가진 과거의 유권자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지하철 모습/ 조문식닷컴)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학계의 입장도 비슷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2일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해 “지금도 문재인 대표가 호남에서 지지가 높다”고 정리했다. 아울러 “호남은 지역주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면서도 “호남 정치인들은 (새정치연합의)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고, 지역 현안에 대해 열심히 안 해도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라고 지역구 국회의원 등과 연관된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 이날 김 정치대학원장은 정치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불신에 대해 “정치 지도자가 안 나온 것에 대한 부분과 (정치인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왔느냐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문식닷컴 journalm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