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우린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조문식 2012. 8. 17. 20:18

우린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조문식

 

 

화창하던 날이 오랜만에 흐리게 변했다
무섭게 방향 없이 쏟아지는 비를 피했다
버스에 타자 물에 젖은 옷들은 비린내를 풍겼다
기계가 내뿜는 찬바람을 피해 자리를 고쳐 앉는다
버스 창에 새겨진 희미한 안개는 마치 도화지 같다
내리는 비에도 아직 도로의 열기가 식지 않아서겠지
세모도 그려보고 네모도 그려보고 하트도 그러본다
저마다 사람들은 말이 없고 그저 무언가에 몰두한다
창을 지우며 보이지 않는 창밖을 보려고도 한다
말을 걸고 싶지는 않다
찌푸리고 무표정한 얼굴들뿐이다
상처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오랜만에 비가 내려서일까
그저 짜증 섞인 슬픈 표정들이 모였다
우린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버스에서 내렸다
비가 잦아들고 구름사이로 옅은 햇살이 보인다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이 비처럼 많게 느껴진다
그 중 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다행이다
조용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본다
항상 지나는 길을 건넌다
오랜만에 물맛을 본 가로수 길에서 새큼한 풀의 향기가 난다
너희들도 좋았구나
오랜만에 갈증을 해소했으리라
너희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공허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쉬우랴
사람들 속에서 왠지 모를 외로움도 느낀다
그런 만남 속에도 삶은 있으리라
나의 삶과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무엇이 다를 수 있으랴
우린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어떤 하루라도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우린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2012년 8월, 여의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