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미스터리 검사(4) - 국회 지하통로의 비밀

2015. 9. 14. 12:00미스터리 검사

[팩션] 미스터리 검사(4) - 국회 지하통로의 비밀


##숨겨진 문자

 

 

 

 

한 기자가 국회 관계자와의 오찬(점심) 약속을 마치고 기자실로 돌아올 때 시계는 오후 2시 언저리에서 움직였다. 기사 마감을 시작해야하는 시간이었지만, 한 기자는 노트북 자판에 손이 가지 않았다. 내일자 지면을 막을 정도의 자료를 정리한 한 기자는 손에 쥔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연락한다는 거야? 아직 출근하지 않은 건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한 기자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한 통의 문자였다.

 

‘한 기자님, 그날은 잘 들어가셨나요? 채은 씨에게 오전 통화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선 지면마감에 집중하세요. 괜찮으시면 오후 6시쯤 전화하지요. - 이한결’

 

한 기자는 이 변호사의 배려 담긴 문자가 고마우면서도, 궁금증이 일어 참기 힘들었다. 우선은 알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마감에 집중했다. 잠시 후 한 기자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한 기자의 선배인 우종군 기자였다.

 

“정석아, 잠깐 커피 한잔 마시고 일하자. 기자출입구 앞에 있을게.”

 

우 기자는 담배에 불을 당기고 있었다.

 

“선배, 오늘 뭐 쓰시나요?”

 

“국감 뭐 별거 있나. 데스크가 자료들 좀 검토한다니까, 잠깐 기다려보자. 사건사고 통계야 너무 흔하고…. 이번엔 기업들 좀 잡아볼까?”

 

우 기자는 담배를 반쯤 태우다말고 종이컵에 타온 커피를 홀짝였다.

 

“정석아, 어제 의원 쓰러진 거 뭐 새로운 정보 없냐?”

 

한 기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감 비서관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결이가 자기 이야기 남에게 하는 걸 정말 싫어해서 소개를 좀 망설였는데, 넌 믿으니까 말해주는 거야….’

 

신중한 감 비서관이 몇 번이나 당부한 말이었기에 한 기자는 아직 세부적인 사정을 알지 못하는 우 기자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뭐, 좀 들리는 소문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일단 국감 챙기는데 집중하려고요. 근데 단식하다가 쓰러지면 수액 맞아야 하겠죠?”

 

한 기자는 짐짓 시치미를 때며 말을 돌렸다.

 

한 기자의 말에 우 기자는 별다른 답이 없었다. 그저 피우던 담배를 종이컵에 남은 커피에 담그고 그대로 계단에 내려뒀다. 그리고는 한 기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석아, 너 단식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아냐?”

 

“글쎄요….”

 

“단식은 말이야 일단 그냥 물, 그러니까 생수 마시면서 하는 방법도 있지. 그런데 물만 마시면 힘드니까 꿀물을 타서 마시는 경우도 있고, 과일즙을 마시기도 해. 녹즙을 마시는 것도 좀 비슷한데, 그것도 힘들다 싶으면 물을 좀 많이 해서 미음을 만들어 먹는 경우도 있지.

 

그러니까 이번 B 의원이 어떤 형태의 단식을 했느냐가 중요하겠고…. 사람이 배가 고픈데 뭐 생각이 나겠냐? 너 한 이틀 굶어본 적 있어? 그런데 사람이 6일이나 굶었는데 제정신이겠냐고. 내 생각에는 이번에 진짜 물만 마신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소금도 적당량을 먹어줘야 되는데, 탈수증상이 나타난건가….”

 

우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자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서 마감부터 하자. 오늘 저녁에 뭐 약속 있어?”

 

“별다른 약속은 없는데요?”

 

“그럼 소주나 한잔하자.”

 

“예….”

 

우 기자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말하고 먼저 기자출입구로 들어갔다.

 

10월의 국회는 봄철 피는 벚꽃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정취를 보이고 있었다. 여의도 강바람도 제법 쌀쌀해져서 오후 늦은 시간이면 도심보다 기온이 낮게 느껴졌다. 잠시 의원동산 쪽을 바라보던 한 기자는 기자출입구로 발길을 옮겼다.

 

한 기자는 마감을 서둘렀다. 이 변호사는 오후 6시쯤 시간을 맞춰 전화를 할 것 같았고, 우 선배와의 약속도 있어 마음이 좀 급했다. 한 기자는 그럭저럭 기사를 잡아 출고한 후 다시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5시 56분…. 예정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한 기자는 조바심이 났다. 한 기자는 편하게 전화를 받기 위해 발길을 다시 기자출입구 밖으로 옮겼다.

 

휴대전화의 화면은 6시로 넘어갔다. 예상대로 잠시 후 이 변호사의 번호가 뜨며 휴대전화가 떨리기 시작했다. 한 기자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한 기자님, 이한결입니다. 통과 준비하고 계셨죠?”

 

이 변호사의 질문에 한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네….”

 

한 기자의 대답에 이 변호사는 가볍게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한 기자님, 국회 지하통로 이용해보셨죠? 거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이 변호사의 갑작스런 질문에 한 기자는 즉시 답하지 못했다.

 

“아… 지하통로요? 거기로는 비올 때 우산 없으면 다니는 정도라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만….”

 

한 기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 같아 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변호사의 언변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국회에 오래 계신 분들 중에 그 부분까지 생각하고 다니는 사람을 별로 없을 겁니다. 괜히 의기소침해할 건 아니라고 봐요.

 

우선 국회 정문 방향에서 본관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지하통로는 한글 자모의 열아홉째 글자인 ㅗ(오)를 나타내죠. 숫자로는 5를 뜻합니다. 이는 밖에서(대중이) 국회를 바라보는 방향에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반대로 국회 본관에서 바라본 지하통로는 한글 자모의 스물한째 글자인 ㅜ(우)를 나타내지요. 이는 오른쪽을 뜻합니다. 19와 21, 대충 감이 오나요?”

 

 

 

 

이 변호사의 질문에 한 기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가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분석하려 했지만, 별달리 생각이 나는 부분은 없었다.

 

“한 기자님, 이번에 말씀하신 B 의원이 단식을 한 곳이 국회 본관 로텐더홀 쪽이지요? 그 아래 계단에서 단식을 진행했을 텐데요? 세부적으로는 국회 분수대 방향으로 계단 오른쪽 민주통합당 쪽에서 말이죠.”

 

현장을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이 변호사의 말에 한 기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깐 고민해보니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 기자는 짧게 웃고 말을 이었다.

 

“이 변호사님, 놀랐잖아요. B 의원이 민주통합당 소속이니 로텐더홀에서 국회 분수대가 보이는 방향 계단 오른쪽에서 단식을 했겠죠. 아무튼 실제 보지도 않으시고 내용을 알다니 대단합니다. 변호사님은 텔레비전도 잘 안보시잖아요?”

 

한 기자는 가볍게라도 답할 수 있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어진 이 변호사의 답변은 매우 논리적이었다.

 

“한 기자님, 음양오행설이라고 들어보셨죠? 우주, 아니 작게 생각해서 우선 인간사의 모든 현상이 음(陰)과 양(陽)의 쌍으로 나타난다는 이론이죠. 남자와 여자, 위(높음)나 아래(낮음), 좌(왼쪽)과 우(오른쪽), 플러스(+)와 마이너스(-)….

 

이들은 대립적이지만 서로 상보적입니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개념은 확장할 수도, 소멸할 수도 있어요. 이 기운에 따라 우주의 운행이 결정된다는 이론이지요. 좀 더 나아가면 음과 양이 생노병사(生老病死,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큰 고통)에 따라 확장 또는 소멸하면서 나타나는 오행의 이치입니다.“

 

이 변호사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한 기자는 이 변호사가 무슨 뜻으로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변호사의 다음 설명에서 한 기자는 소름이 끼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조문식 sharpsharp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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